소루담

3화

지아가 찾아낸 남자의 이름은 문성규였다. 마흔하나. 아동 대상 범죄로 두 번 복역했고 지난달 출소했다. 지아는 그 이름을 화면에 띄워 놓고 한참 말이 없었다.

“선생님, 이 사람 동선이 일정해요. 출소하고 한 달 내내 밤 열한 시쯤 같은 골목으로 들어가요.”

“어디지.”

“여기서 두 정거장요. 상가 뒤편 쓰레기 집하장 쪽인데, 그 길로 가면 원룸촌이 나오고요. 근처에 초등학교 후문이 있어요.”

태식은 도윤의 기록 창을 닫으라고 했다. 지아가 눈을 들었다.

“판사는 접어 두는 거예요?”

“오늘은 이쪽이다.”

대답하고 나서 태식은 자신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은 걸 들었다. 건우가 창가에서 일어나 점퍼 지퍼를 올렸다.

밤 열 시 반의 상가 뒷골목은 간판 불이 반쯤 꺼져 있었다. 치킨집 환풍기가 기름 냄새를 길바닥으로 내뱉었고, 어디선가 물 빠지는 소리가 끊겼다 이어졌다. 태식은 편의점 차양 아래 서서 손목시계를 봤다. 건우는 골목 안쪽 전봇대 그림자에, 지아는 길 건너 세워 둔 차 안에 있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십 분 전에 지하철 출구 나왔어요.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 샀고, 지금 걷는 속도로 보면 삼 분이에요.”

“알았다.”

“선생님.”

“말해.”

“오른쪽 주머니에서 계속 뭘 만지고 있어요. 칼은 아닌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아요.”

건우의 짧은 숨소리가 이어폰에 섞였다. 그는 대답 없이 어깨만 한 번 돌렸다.

발소리가 났다. 슬리퍼 끄는 소리였다.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소주병이 든 봉지를 흔들며 골목으로 꺾어 들어왔다. 태식은 차양 밖으로 한 걸음 나섰다. 심장이 빨리 뛰는데 손끝은 이상하리만큼 차가웠다. 수첩 속 기도문이 문득 한 줄 떠올랐다가 흩어졌다.

“문성규 씨.”

남자가 멈췄다. 모자 챙 아래에서 눈이 올라왔다.

“누구요.”

“할 얘기가 있습니다. 저 안쪽에서.”

“내가 왜.”

그 순간 건우가 그림자에서 나와 남자의 뒤를 막았다. 남자의 어깨가 움찔했다. 봉지가 떨어지며 병이 아스팔트에 부딪혀 깨졌다. 소주 냄새가 확 올라왔다. 성규가 몸을 틀어 도망치려 했으나 건우의 팔이 먼저 목 옆을 감아 벽에 붙였다. 힘을 쓰는 것 같지도 않은 동작이었다.

“조용히 해요. 소리 내면 더 아픕니다.”

건우의 말은 그게 다였다. 태식은 천천히 다가가 남자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눈 밑이 푹 꺼져 있었고, 숨에서 시큼한 술내가 났다.

“두 번 복역했지. 두 번 다 형기를 다 채우지도 않았고.”

“그건 법대로 한 거요. 나 할 만큼 했어.”

“법대로.”

태식은 그 말을 되풀이했다. 오세진의 선고 장면이 눈앞에 겹쳤다. 변호사의 어깨를 두드리던 손, 계단에 주저앉은 어머니의 등. 그러자 손이 먼저 움직였다. 주먹이 남자의 복부로 들어갔고, 신음과 함께 몸이 접혔다. 태식은 제 손이 얼얼한 걸 느끼고서야 자신이 쳤다는 걸 알았다.

이어폰에서 지아의 목소리가 급하게 올라왔다.

“선생님, 여기서 멈추세요. 아까 그 전송 로그, 아직 수신처가 안 열렸어요. 누가 보고 있을지 몰라요. 지금이라면 돌아갈 수 있어요.”

태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건우가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선생님.”

낮고 짧은 부름이었다. 건우는 남자를 벽에 붙인 채로 한마디 덧붙였다.

“여기까지만 하시죠. 이 이상은 제가 말릴 수 없게 됩니다.”

“알고 있다.”

“그럼 왜.”

“이 사람이 내일도 저 후문 앞을 걷기 때문이다.”

태식이 말했다. 그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건우의 표정이 굳었다. 말리려던 팔이 반쯤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지아가 이어폰에서 한 번 더 이름을 불렀지만 태식은 이어폰을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

남은 일은 길지 않았다. 태식은 남자의 오른손을 잡아 벽에 대고 손목을 꺾었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골목에 작게 울렸고, 성규가 짐승 같은 소리를 냈다. 건우가 그 입을 틀어막았다. 태식은 숨을 고르며 손을 놓았다. 손바닥에 남의 체온이 눌어붙어 있었다.

“이 손으로는 이제 아무것도 못 한다. 그렇게 알아.”

남자는 벽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앉았다. 건우가 그의 가슴께를 눌러 앉힌 뒤 일어났다. 셋은 말없이 골목을 빠져나갔다. 환풍기 소리가 뒤에서 계속 돌았다.

골목 끝 모퉁이에서 태식이 발을 멈췄다. 뭔가 걸리는 느낌이 있었다. 돌아서서 어두운 골목 안을 봤다. 쓰러진 남자의 구부러진 왼손 안에서 흰 종이 귀퉁이가 삐져나와 있었다. 때려눕힐 때는 없던 것이었다.

“건우 씨, 불 좀.”

건우가 휴대전화 조명을 켜 들고 다가갔다. 남자는 숨을 몰아쉬며 눈을 감고 있었다. 태식이 쪽지를 뽑아 펼쳤다. 접힌 자국이 선명한 메모지에 볼펜으로 그린 붉은 원이 하나 있었다. 번진 데 없이 반듯한 원이었다. 그 아래에는 날짜와 시각이 적혀 있었다. 오늘, 오후 여덟 시 십 분.

“우리보다 두 시간 먼저예요.”

건우가 나직이 말했다.

“준호.”

태식이 이름을 뱉었다. 그가 이미 이 남자를 만났고, 이 골목이 어디로 이어지는지까지 짚어 두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막지 않았다. 아니, 막지 않은 게 아니라 기다린 것인지도 몰랐다. 태식은 쪽지를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남자의 숨소리가 가쁘게 잦아드는 동안, 건우가 구급차를 부르겠다며 공중전화 쪽으로 걸어갔다.

집에 도착한 건 자정이 지나서였다. 현관 불은 꺼져 있었고 거실에는 아이들의 운동화가 흩어져 있었다. 아내가 남겨 둔 식탁 위 쪽지를 태식은 읽지 않고 접어 두었다. 씻지도 않고 소파에 앉아 손을 폈다. 마디가 부어 있었다. 손바닥에서는 아직 소주 냄새가 났다.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발신 번호 없는 문자였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태식은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이번에도 지우지 않았다.

AI와 함께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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